1) 본문: 사무엘상 9:15-27

 

2) 본문연구 및 묵상내용:

사울이 왕으로 등극하는 것은 갑자기 내려진 결정이 아니라

사사기에서부터 보여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을 떠난 삶에 대한 열매로 보인다.

하나님을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모시기를 기뻐하지 않고,

다른 열국처럼 스스로 왕을 세워서 부강한 나라를 만들고 싶어 했던 인간적인 욕심이

사울이라고 하는 결과를 자연스럽게 낳게 한 것이다.

베냐민 지파의 죄악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잔인한 내전에 대한 기록이 사사기 종반에 기록되어 있다.

그 결과 베냐민 지파는 멸절 위기에 처하고(20:47),

이스라엘 백성은 베냐민 지파에게 딸을 주지 않기로 미스바에 모여서 맹세한다.(21:1)

결국 베냐민 지파를 재건하기 위하여 또 다른 살육이 자행되어지고, 편법이 행해진다(21:10-12, 21).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나이까”(21)

사울의 말은 과정됨이 없는 것이었다.

사사기의 결말은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21:25)라는 말로 맺고 있다.

이스라엘에겐 왕이 있었다. 바로 만군의 주 여호와이시다.

이스라엘을 구별하여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군대 삼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의 왕이셨다.

그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천군천사를 다스리는 왕이심과 동시에

이 땅에 이루신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의 왕이시기도 했던 것이다.

이 사실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버림을 받으셨다고 말씀하신 것이다(삼상8:7).

, 선지자, 제사장은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로써

마땅히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이 땅에서 충성되게 청지기의 역할을 감당하여야 할 사람들인 것이다.

열방의 왕들과 같이 스스로를 신처럼 높이기 위하여

, 선지자, 제사장의 모든 직임을 혼자 모두 차지하려고 하는 독불장군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아무리 겉 모습이 출중하고, 아무리 성품이 좋아 보여도

하나님께서 누구신지, 그 하나님께서 나를 어떤 위치에 세우셨는지 바르게 깨닫고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함으로 바른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사람은 청지기르써 역할을 감당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울은 어쩌면 인간적인 측면에선 훌륭한 왕의 제목이 될 수 있었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신의 사명을 인식하는 지혜에서

참으로 무지함을 보임으로 인해 결국 실패한 사명자가 되고 만다.

그는 자신의 사명의 모본을 세상의 왕들에게서 찾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명자들은 항상 하나님과 맺어진 바른 관계를 통해 자신의 사명을 인식해야 할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혜의 근본인 것을 바르게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하나님께서 누구신지 깊이 경험적으로 아는 지식으로부터 생겨난다.

하나님을 만군의 주 여호와로 고백하였던 다윗의 시작과 너무나 비교가 되는 사울의 시작은

결국 다윗과는 너무나 다른 결말을 맺게 되는 것이다.

말씀에 비추어 우리의 삶을 비추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주님 앞에 서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가?

사울과도 같은 모습인가? 아니면 다윗과도 같은 모습인가?

골리앗 앞에서 물매를 돌릴 때에도,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척을 할 때에도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기름부은 자로 그 자리에 서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었으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할 수 있었음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