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사무엘상 20:24-34

 

2) 본문연구 및 묵상내용:

오늘 본문에 중심인물은 사울, 요나단, 다윗이며

중심내용은 이 세명의 중심인물들 사이에 맺어진 관계를 통해 발생하는 사건들이다.

이 사건의 발단은 사무엘상 18:9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라는 말씀을 통해

사울이 다윗과 처음부터 잘 못된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관계의 시작은 시기심과 경계심이었다.

그리고, 당연한 것이었겠지만 그 관계의 열매는,

사울이 다윗을 더욱 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18:29)로 맺혀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형통한 관계를 허락해 주셔서

생명의 위기 때 마다, 예비된 사랑의 관계로 인해 도움을 받게 하신다.

사무엘상 19:1-7절엔 요나단이 다윗을 구명하며,

8-17절엔 미갈이 다윗을 구해준다.

그리고, 18-24절엔 사무엘 선지자가 다윗을 구해 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질서의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관계를 통해 일하시기를 기뻐하심을 보이신 장면들이다.

우리 역시 이 땅에 살면서 얼마나 많은 관계의 축복을 누리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참으로 연약한 아기였을 때부터 부모의 사랑에 의해 보살핌을 받았고,

학생과 선생님의 관계에 의해 가르침을 받았고,

친구들 사이의 관계로 인해 우정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이 외에도 셀 수 없는 많은 관계를 통해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사람이 맺고 살아가는 관계는 참으로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그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바른 것인지 성경적으로 알고 있지 못하다면,

관계를 통해 공급되는 유익을 온전히 누릴 수 없을 것이다.

사울과 요나단은 부자지간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향해 각기 다른 모습으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사울의 관계는 파괴된 관계로써, 오직 두려움과 적대감만 남은 관계였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사울의 관계 형성은 지극히 세속적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유익이 되면 이용하고, 자신에게 유익이 되지 않으면 버리는 관계는

바른 군신의 관계를 이루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경쟁을 통해 상대방을 짖밟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성향 역시도 지극히 세속적인 것이다.

다윗은 경쟁을 통해 왕권을 승계할 사람이 아니었다.

다윗의 왕권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시는 권위이며, 하나님께서 세우실 사명의 자리였던 것이다.

그런데, 사울은 다윗을 죽임을 통해

자신의 위치와 요나단의 위치를 지킬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어리석음을 보이고 있다.

사울의 눈에 다윗은 자신의 왕권에 도전하는 도전자이며, 걸림돌이었기에

반드시 죽어야 하는 자(31)로 보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다윗을 사랑하되 생명처럼 사랑하였다(18:1,3; 20:17).

상대를 마음으로 품은 사람은 그 관계를 위해 그 어떤 희생도 감내하려고 하며,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화목한 관계를 지켜내려고 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아직 원수되고, 아직 죄인 되었던 우리에게 보이신 모본처럼 말이다.

화목의 관계는 거져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사랑이라는 대가 말이다.

그 값이 지불되지 않는다면 관계 회복은 없는 것이다.